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백제 도성 (문단 편집) === [[동고산성]] 일대 === 1980년부터 2014년까지 [[동고산성]]은 큰 관심을 받았다. 동고산성(東固山城)은 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과 대성동 일대에 걸쳐 있다. 동고산성은 대략 [[신라]] [[신문왕]] 대에 1차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2차로 9세기 즈음에 대대적으로 개조, 보수 되는데 이 때 견훤이 궁성으로 바꿨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고산성은 총 1,600m의 둘레이며 [[발해]] [[상경용천부|상경성]]의 황, 궁성과 비슷하다. 가장 큰 건물터는 가로 22칸, 세로 3칸이며 총 7 군데의 대건물터가 있다. 동문, 서문, 북문이 있었으며 정문은 서문으로 보인다. '전주성(全州城)'이라 적힌 수막새가 발굴됐고 관(官) 자 기와, 천(天) 자 기와가 계속 발견됐다. 조선 숙종 대에 편찬된 '전주 성황사 중창기(全州 城隍祠 重創記)'엔 이 곳(성황당터)이 견훤의 옛 궁궐이라고 적고 있다. 이렇게 보면 동고산성이 확실한 듯 싶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부정되고 있는데, '''일단 너무 접근성이 떨어진다.''' 만약 진짜 동고산성이 도성이었다면 한때 한반도 서남부를 손에 넣고 동남부를 휩쓸고 북부까지 휘젓고 다닌 나라의 수도치곤 지나치게 깊숙한 곳에 있다. 그리고 산성의 크기가 궁성 정도의 크기이고 궁성 밖의 내성, 외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1980년대에 전영래(全榮來, 1926~2011) 원광대 교수[* 전주성 수막새를 찾아낸 교수.]는 동고산성을 궁성으로 보고 주위에 내성(황성), 외성(나성)이 둘러 쌓고 있었을 거란 주장을 펼쳤다. 동고산성은 평범한 산성이라고 하기엔 대형 건물터가 많고 면적도 상당히 컸기 때문이다. 현재의 학계의 결론은 동고산성, 그러니까 당시 '전주성(全州城)'은 비상용, 전시용 궁성으로 보고 있다. 마치 고구려의 [[대성산성]] - [[안학궁]], 신라의 경주 주변 산성 - [[경주 월성]]처럼 말이다. '접근성 낮은 산성 궁성'[* 전시 궁궐.]이 하나 있고 '접근성이 높은 평지 궁성'[* 평상시 궁궐.]이 있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